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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4 아직 기억하는 이름.....<영웅>

아직 기억하는 이름.....<영웅>

 

뮤지컬 <영웅>

 

 

 

 

천성이 착하지 못한 탓인지...삐딱하게 보는 걸 좋아하는 탓인지...

정답이 뻔하게 보이는 문제에 대한 천성적인 거부감이 있다.

그러니 애국심에 호소하는 행동,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이야기들에는 나도 모르게 바로 거부감이 들곤 했다.

그건...정답처럼 여겨졌기 때문일거다.

 

 

 

그런데...<영웅>을 보러 갔다.

주인공의 이름만 보고서도 무슨 이야기일지 너무나 뻔해서 절대 선택하지 않을...

그것도 전혀 검증된 바 없는 창.작.뮤.지.컬...

더구나 보는 내내 하품을 참아낼 수 게 만들었던 <명성황후>와 같은 뿌리를 두고 있는 작품

 

 

 

아마도..아니..분명히..배우의 이름이 아니었더라면 절대..NEVER 볼 생각조차 안했을거다.

(그러니...배우의 이름이라는 게...중요하기는 참...중요하다...)

항상 이름에 대한 기대치를 만족시켜주는 류정한과

몇 년 사이 아...이 사람은 TV로 갈 필요 없겠구나 싶게 자리를 확고히 잡은 정성화가 더블캐스팅 되었다는 이야기에..

그래 어쩌면 하는 기대를 아주 살포시 가지게 만들었으니...그렇게..이 작품을 보러 가기로 결정을 하고...

가을이 완연하던 어느 날 예매를 해두고...긴 시간을 뛰어넘어 지난 11월 <영웅>을 보기 위에 LG 아트센터를 찾았었다.

그리고 또 한 번...그리고도 또 한 번....

 

 

 

윤봉길 도시락 폭탄,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 이렇게 무슨 공식 외우듯 외웠던 그 어느 시절의 역사가

좁은 무대 위에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진 속 누군가가 아닌 살아있는 아니 언젠가의 시간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되살아나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지금의 내 나이 즈음...저 멀리 고향집에 어머니와 아내 얼굴도 채 익히지 못했을 아이들을 남겨둔 채

망해버린 한 나라의 국민, 군인으로서만 살아야 했던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지금도 제 자리를 찾지 못해 항상 방황하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무대 위 누군가가 이야기했던 '나라 잃은 젊은이들은 일찍 철이 든다'는 게 정말 맞는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버린 채 품은 뜻을 향해서 오롯이 달린 사람들의 삶 조차도 제대로 기록되지도 평가받지도 못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고....

 

 

 

그러면서 생각은 또 바다를 건너...

바다 건너 저 섬나라에 살던 그 사람은 아...그 사람도...삶이라는 것도

우리가 배워오고 알아온 역사속 한 인물로서가 아니라 그 스스로 존재하는 무엇이 있었구나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생각을 그렇게 이끈 것이 <영웅>이 가진 매력이었다.

이토에 대한 시선을 단순히 국사책 한 구석의 단어 몇 개로 한정짓는 것이 아니라

보다 객관적인 눈으로 논리를 부여하면서....저 사람은 저 사람의 역사 속에서 택할 수 있었던 여러 갈래의 길 중...

우리가 알고 있는 이 길을 택했던 거라는...그래서...그 길이 내가 배운 역사속에서는

아픔으로 자리잡았지만....그에게는 또 그들에게는....

 

 

 

안중근과 이토의 이중창을 들으면서....사람과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저 둘 각자의 조국(낯간지러운 표현이라 좋아하지는 않지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법에 있어서는 공통분모가 꽤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할 수 있었다.

다만...

각자가 꾸고 있는 꿈을 실현함에 있어 상충되고 부딪쳐 상채기를 내고...

결국은 누군가로 하여금 고향으로 돌아갈 꿈을 포기한 채 차가운 권총을 들게 만든 것...그런 시간이 있었다는 것....

 

 

 

낯선 타향에서 각자 다른 언어로 또한 문화로 부딪치면서....

고픈 배를 공유하는 사그러진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의 손에 들렸던 만두...

웃고 있지만 눈물 어린 그 노래를 들으며...힘없는 나라가 개인에게 요구하였던 희생의 한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왜 아직 철이 들지 않아도 되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철이 드는 삶을 택했는지...그 모습을 바라보며 그냥 시큰한 눈을 부빗거리는 것이

다시 만난 <영웅>이 걸어온 이야기였다.

 

 

 

각자 다른 말의 억양, 속도, 색깔, 게다가 다른 '아리랑'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하나의 이야기를 나누고...오늘이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삶을 치열하게 사는 모습...

왜 그들은 사는 것이 숨쉬는 것이 치욕이라고 여겨야했을지...그리고...돌이켜보면...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나 오래된 저 멀리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무대를 바라보며 지극히 교과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도 놀랐지만...

좀 쉬어가라며....호흡을 편안하게 해주는 장면에서도 마음껏 편할 수 없는...그런 마음으로...

그저 눈물 겨운 만두를....눈물 겨운 채가구역을....지켜봐야했다.

 

 

 

그리고...어머니....

'엄마'라는 말이 주는 공기의 파장은 어느 순간에서도 심장을 자유롭게 하지 않는 법이다.

젊은 나이에 멀리 떠나 끝이 뻔히 보이는 삶을 사는 아들을 위해 그저 눈물 삼켜 기도하는 어머니의 삶이...

그게..사는 것이었을까....

그 아들을 위해서...스스로 수의를 지어 보내던 그 손길은...또 얼마나 많은 울음을 쏟아냈을까....

짧고도 가혹한 모자의 연을 노래하며...그저 품에 한번 안아보기라도 했으면...그렇게라도 했으면을 노래하는...

어머니의 모습에...휴우...

 

 

 

 

평생을 궁녀로 살면서 스스로의 삶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자신을 내던졌던 설희의 삶....

그 아이가 황혼의 자리에 서 있는 이토를 만나 스스로 살아내야 한다고 알고 있는 그 삶과...새롭게 마주한 삶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려하며...한발작 한발작 내딛는 그모습도...

 

열 여섯 소녀의 설레는 첫사랑 따위는 허락도 되지 않는 쉽사리 사그러진 링링의 삶도.....

 

 

 

 

 

'안중근'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대놓고 무슨 이야기를 할지 너무나 뻔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기대한 것과는 달리...잘 짜여진 이야기로 사람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이런 저런 생각으로..계속 무언가를 곱씹게 만드는... 

무대 형상화의 놀라운 모습 따위는 말하지 않아도 될만큼....

오래간만에 꽤 많은 이야기를 걸어온 .... 그런 작품을 하나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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