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6일 아침을 먹다가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할아버지가 호흡이 멈췄다는 전화가 와서였다. 다행히 다시 호흡은
돌아왔지만 자극에 대한 반응은 매우 약했다. 갑자기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2인실에서 1인실로 병실을 옮겼다. 호흡을 멈추기를 4번, 다시 돌아오기를 4번...목사님을 모셔 예배도 드리고, 임종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였다. 미국에 있는 사촌 언니에게도 연락이 가고, 호주의 삼촌 가족에게도 연락이
갔다. "이제..나와야겠다."
92병동의 송은선 간호사가 저녁 시간 담당 간호사라는 것이 무엇보다 다행하게 여겨졌다. 할아버지의 입원 기간에 능력 있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람이었다. 우왕좌왕하는 가족들에게 경련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었다. 그리고 항경련제 투입이 시작되었다.
의사는 숫자만 본다. "왜"냐고 물으면 검사 결과가 괜찮으니 이상이 없는 거란다. 숨이 차 헐떡거리는 환자에게 숨이 찬
게 아니라 숨이 차 보일 뿐이란다. 숫자를 보며 정답을 찾아낼 수 있다면야 좋겠지만 그 냉정함이 치떨리게 싫은 순간이 있다.
4월 7일할아버지의 경련이 조금 나아졌다. 손을 잡으면 힘주어 잡기도 하시고, 눈을 떠 식구를 보기도 하셨다. 미국에서 정선언니가 날아왔고, 평안한 상태의 모습을 보이셨다. 호주 삼촌에게 괜히 연락한 건 아닌가 이런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많이 불안한 상태에 1인실로 옮긴 것은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구들도 많이 들어와 있을 수 있고, 옆 환자를 신경 쓸 필요없이 할아버지에게만 신경을 쓰면 되고...그런데 왜 할아버지가 조금만 더 힘을 내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지에 대해서 머릿속이 복잡하기는 하다. 지금처럼 힘든 상황에서 가장 좋은 건 이제 정말 쉬시는 것일텐데 말이지...결국 남는 자들이 가지는 욕심일까?
4월 8일아침부터 할아버지의 경련이 한 시간 간격으로 계속 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마음이 또 불안해졌다. 퇴근을 하고 병실에 가 할아버지를 뵈었다. 경련을 기록해 놓은 것을 보니 정말 1시간 간격으로 쭈욱이었다. 한번 경련이 올 때마다 온몸에 에너지를 다 소모해버리는 것인지 온몸이 땀투성이가 되곤 하는데...하루 종일 그랬다니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속상해졌다. 큰삼촌과 저녁을 먹으면서 할아버지와 상관없는 선거 이야기를 하며 정신을 흩어보려고 했지만 이래저래 복잡했다. 병실에서 할아버지 손을 잡고 앉아 속상한 마음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호주에서 작은 삼촌과 숙모가 도착하였다.
그 저녁 할아버지와 단둘이 있던 병실에서 할아버지가 경련을 또 하셨다. 지난 경련이 있은지 채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무섭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였지만 알려준 대로 경련 시작 시각을 체크하고 간호사실에 연락하였다. 그 후로 40분 간격으로 계속 경련을 하셨다. 그리고 엄마는 그 밤 병실을 떠나지 못하고 할아버지 옆에서 계속 기도를 했다고 한다.
4월 9일할아버지의 생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다. 병실에 가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생일날까지라도...'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막상 그 생일날을 맞으니 마음 한켠이 또 아파왔다. 억지로 잠을 더 청했다. 그리고 집에 날아 온 택배를 하나 받았다. 얼마전 주문한 옷이었다. 장례식에 입을 검정색 상복... 우스운 마음도 들고 슬픈 마음도 들고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이었다. 냉장고를 열어 포도 한 송이를 씼어 팩에 쌌다. 병실에 들고 가 식구들과 나눠 먹어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기분을 추스르고 병실로 향했다. 삼촌과 외숙모 이모 사촌 언니가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은 경련이 30분, 20분 간격이라고 하고, 그래서 다시 코줄을 끼운다고 했다. 그동안 코줄로 음식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위가 전혀 소화 작용을 못해서 혈관을 잡아 영양을 공급했었는데, 주사로 들어가는 항경련제가 작용을 잘 못하는 것 같아 코줄로 투여를 해보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코줄을 끼우고, 그걸 손보고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어 사촌 언니와 잠시 밖에 나갔다. 이런 저런 이야기...눈물의 생일파티를 했다는 이야기...공유하는 추억에 대한 이야기...마음에 대한 이야기...
할아버지 손을 잡아보니 어제보다 조금 부어있었다. 어제까지는 가래가 끓는 소리를 내지는 않으셨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계속 가래가 끓는다고 했다. 간호사를 또 불렀다. 석션을 하는 모습이 영 신통치 않았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또 경련을 하셨다. 35초 정도였다. "할아버지..이제 괜찮아요. 괜찮아요."라고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그다지 땀을 많이 흘리지는 않으셨다. 그런데 또 목에서 그르렁하면서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간호사실에 다시 요청을 했다. 또 가래를 뽑아 내고, 여전히 영 신통치 않은 모습이었다. 간호사가 나가고 할아버지 침대 옆에 다시 가 섰다. 그런데...산소포화도 수치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뭐지 싶어 다시 사람을 불렀다. 간호사들이 들어오더니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모습은 그냥 그대로인데 기계가 그리는 수치들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심박 그래프 모양도 영 이상했다. 그 와중에 큰외숙모가 호흡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할아버지 손을 잡았다. 손을 잡을 때마다 느껴지는 콩닥거리는 맥이 없었다. 다른 간호사가 뛰어오고 주치의를 부르고 식구들은 다 공황상태에 빠지고...병실 안은 온통 소란스러운데 할아버지는 그냥 너무나 평안한 모습이었다.
4월 9일 오후 4시
그렇게 할아버지는 떠나버리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