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는 엄하지도 않았고, 무서운 사람도 아니었는데...돌이켜보면 할아버지와 엮인 기억들은 가물가물하다. 나에게 외할아버지는 항상 외할머니와 세트로 묶인 사람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한 일에 또 함께 한 누군가였고,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함께 앉은 사람, 할머니를 보러 간 집에 함께 있는 사람...이렇게 써놓고 나니 정말 관계라는 게 없었구나 싶어진다.
외가와 엮인 모든 기억은 외할머니를 통해서였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그러했다. 그냥 모든 일의 중심에는 할머니가 계셨고, 닥친 문제를 정리하는 건 항상 할머니의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04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내던 말은 "할머니가 계셨으면..."이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계신던 분이 아니었는데... 젊은 날부터, 거의 최근까지 열심히 일하고, 왕성히 활동하시던 분이었는데 중심에서 본 건 할머니뿐이었다.
엄마는 시집오기 전까지 할아버지와 개인적으로 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해서 집을 떠나던 날 할아버지가 눈물을 보여서 좀 놀랐다는 이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자식한테뿐만이 아니라 손자 손녀들에게도 그러하셨었다. 게다가 난 손녀들만 줄줄이 있는 집에 태어난 그것도 외.손녀였으니 할아버지와 감정적 교감을 가질 일이 더욱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어쩌면 뼛속까지 충청도 양반 기질이 가득한 할아버지에게는 식구들과 감정의 교감을 나누는 그런 삶은 머릿속에 전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에 할아버지가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셨던 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손이 태어났을 때였다. 할아버지의 줄줄이 손녀는 내가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 태어난 내 동생도 그렇고 사촌 동생들도 그렇고 다 손자들이었는데 그 아이들을 다 제쳐놓고 정말 끝무렵(?)에 태어난 '장손'에게는 맘껏 사랑을 주셨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할아버지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매우 명확한 분일지도...
어쨌든 줄곧 별 관계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마음으로 짠~하고 뭐 그런 감정도 없던 할아버지와 혼자서 새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니 관계는 서로 맺는거니까...혼자서 할아버지에게 한발자국 맘대로 다가섰다고 해야 할거다. 병원에 들어가시고, 퇴원을 못 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못 하실 수도라는 가정이 아닌 그게 기정사실화되고, 매일매일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고 하는 지금에 와서야...퇴근을 하고 병원에 가서 볼 수 있는 할아버지는 정말 평온할 얼굴로 주무시거나, 알 수 없는 말들을 하시면서 고통을 호소하시거나, 멍한 얼굴로 낯선 모습으로 계시거나...이런 모습뿐이었다.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시면 다행이고, 깨어 계시다면 어딘가 불편하신 경우가 많다. 고통이 아주 심하실 땐 이미 눈동자도 초점을 잃고 행동도 과격해지시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늘은 넘겨온 수많은 고비 중 꽤 큰 고비를 넘기고 들어왔다. 아침...예배 드리러 가기 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의식이 없다는 연락이 왔고 허둥지둥 달려간 병원에는 아무런 의식없이 축 늘어진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호흡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뇌사 상태라는 말을 뱉은 의사도 있었고, 통증에도 반응이 전혀 없던 순간도 있었고, 동공은 풀려있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경련과 함께 호흡이 멎기를 네 차례...또한 안정되기를 네 차례...그 사이 울고 웃고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흘러가고...죽음이라는 관문 앞에선 그동안 들고 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더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편찮으시지 않았던 그 긴 시간 동안은 그냥 예의로 끈을 잡고 있었고, 지금은 완벽히 무장해제된 채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데 이제서야 할아버지와 손녀로 손을 살짝 잡는다. 그것도 매우 일방적인 소통밖에 안되는 이런 때에... 너무나 아쉽지만 돌이켜보니 지난 시간동안 할아버지와 좋았던 시간을 공유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외가와 엮인 모든 기억은 외할머니를 통해서였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그러했다. 그냥 모든 일의 중심에는 할머니가 계셨고, 닥친 문제를 정리하는 건 항상 할머니의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 2004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후, 무슨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입버릇처럼 되내던 말은 "할머니가 계셨으면..."이었다. 할아버지가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계신던 분이 아니었는데... 젊은 날부터, 거의 최근까지 열심히 일하고, 왕성히 활동하시던 분이었는데 중심에서 본 건 할머니뿐이었다.
엄마는 시집오기 전까지 할아버지와 개인적으로 별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결혼해서 집을 떠나던 날 할아버지가 눈물을 보여서 좀 놀랐다는 이야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자식한테뿐만이 아니라 손자 손녀들에게도 그러하셨었다. 게다가 난 손녀들만 줄줄이 있는 집에 태어난 그것도 외.손녀였으니 할아버지와 감정적 교감을 가질 일이 더욱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어쩌면 뼛속까지 충청도 양반 기질이 가득한 할아버지에게는 식구들과 감정의 교감을 나누는 그런 삶은 머릿속에 전혀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기억에 할아버지가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셨던 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손이 태어났을 때였다. 할아버지의 줄줄이 손녀는 내가 마지막이었고, 그 이후로 태어난 내 동생도 그렇고 사촌 동생들도 그렇고 다 손자들이었는데 그 아이들을 다 제쳐놓고 정말 끝무렵(?)에 태어난 '장손'에게는 맘껏 사랑을 주셨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할아버지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매우 명확한 분일지도...
어쨌든 줄곧 별 관계가 없었고, 그러다보니 마음으로 짠~하고 뭐 그런 감정도 없던 할아버지와 혼자서 새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하고 있다. 아니 관계는 서로 맺는거니까...혼자서 할아버지에게 한발자국 맘대로 다가섰다고 해야 할거다. 병원에 들어가시고, 퇴원을 못 하실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못 하실 수도라는 가정이 아닌 그게 기정사실화되고, 매일매일 크고 작은 고비를 넘기고 하는 지금에 와서야...퇴근을 하고 병원에 가서 볼 수 있는 할아버지는 정말 평온할 얼굴로 주무시거나, 알 수 없는 말들을 하시면서 고통을 호소하시거나, 멍한 얼굴로 낯선 모습으로 계시거나...이런 모습뿐이었다. 평온하게 주무시고 계시면 다행이고, 깨어 계시다면 어딘가 불편하신 경우가 많다. 고통이 아주 심하실 땐 이미 눈동자도 초점을 잃고 행동도 과격해지시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오늘은 넘겨온 수많은 고비 중 꽤 큰 고비를 넘기고 들어왔다. 아침...예배 드리러 가기 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병원에서 의식이 없다는 연락이 왔고 허둥지둥 달려간 병원에는 아무런 의식없이 축 늘어진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주머니의 말에 의하면 호흡이 정지되었다고 한다. 뇌사 상태라는 말을 뱉은 의사도 있었고, 통증에도 반응이 전혀 없던 순간도 있었고, 동공은 풀려있었고...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경련과 함께 호흡이 멎기를 네 차례...또한 안정되기를 네 차례...그 사이 울고 웃고 다양한 감정이 복잡하게 흘러가고...죽음이라는 관문 앞에선 그동안 들고 있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더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편찮으시지 않았던 그 긴 시간 동안은 그냥 예의로 끈을 잡고 있었고, 지금은 완벽히 무장해제된 채 병원 침대에 누워 계신데 이제서야 할아버지와 손녀로 손을 살짝 잡는다. 그것도 매우 일방적인 소통밖에 안되는 이런 때에... 너무나 아쉽지만 돌이켜보니 지난 시간동안 할아버지와 좋았던 시간을 공유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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