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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누나의 이야기▒

어제 본격적으로 2008년의 대대적 야근을 시작했다. 2008년 들어 처음 야근한 것은 아니지만 1년 계획표 상 앞으로 10달은 90%정도 야근을 하는 일정이라, 대대적인 야근의 시작이라고 명명했다. 저자 협의회가 오전, 오후로 두 건이나 잡혀 있고, 이런 저런 계획만으로도 지치는 날.

오전에 협의회 하나는 쉽게 마쳤다. 기획회의.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그나마 힘이 나는 시간. 오후 내내 원고 정리를 하고, 저자들에게 전화를 해 또 한번 닥달을 하고, 오후 협의회에 올 저자들 스케줄을 다시 확인하고. 아! 그런데 뭔가 조심이 이상하다. 원고의 70%를 주지 않아놓고 오늘까지 다 써오겠다고, 오늘 협의회하자고(회의 날짜, 시간을 어찌나 많이 변경했는지) 한 이 사람 또 전화를 안받는다. 결국 자기때문에 회의 날짜, 시간 계속 바꾸게 한 이 분은 7시로 약속된 회의에 8시가 넘어서 나타났다. 솔직히 저자들이 편집자에게 예의 없는 건 숱하게 봐온 일이라 그렇다고 치더라도(물론 당할 때마다 기분 무척 상하지만), 다른 저자도 함께 모이는 회의에 대놓고 늦는 거라든지, 늦었다고 사과 한마디 제대로 안하는 모습이라던지, 그 와중에 원고도 다 안써온 거라든지...이래저래 사람 지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이 있는 분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그렇게 늦게까지 지친 마음으로 사무실에 있다가 퇴근을 하는 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많이 복잡하던 그런 퇴근 길.

합정역에서 2호선을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때 마침 지하철이 들어오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뛸까? 아니야 다음거 타지 뭐. 아니야 이 시간에는 자주 오지도 않아. 어쩌지?' 뭐 이런 생각을 잽싸게 하다가 열심히 뛰어 간신히 그 지하철을 타고 다른 칸으로 옮기는데, 그곳에 도교장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무슨 반사작용처럼 선생님 얼굴을 보자마자 꾸벅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도 어찌나 반가워 해주시던지. 선생님도 그런 자리에서 그 옛날 제자를 만나실거라고는 생각도 못하셨을테니. 고등학교 졸업한지 10년도 넘었고, 그 사이 뵐 기회도 거의 없었는데 살짝 여유로워지신 것을 빼놓고는 여전하신 모습이었다. 간단하게 인사를 드리고, 퇴근하는 길이라고 하니 퇴근이 많이 늦다고 걱정도 해주시고, 요즘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하고, 선생님께서는 왜 올라오셨는지 이야기도 듣고, 엄마에게 안부를 전하는 말씀과 이런저런 간단한 이야기들 끝에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잠시 선생님을 뵌 것이었지만 그 잠시의 시간이 참 감사했다.

만약에...
처음부터 끝까지 맘에 든는 행동이라고는 하나도 안하는 저 저자가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일찍 회의에 왔더라면 선생님을 뵙지 못했을거다. 그리고 그 저자가 원고를 100% 다 써와서 협의회 할 시간이 10분이라도 더 길어졌더라면 선생님을 뵙지 못했을거다.
게다가 그냥 다음 지하철을 타자고 포기했더라면, 다른 칸으로 옮기지 않았더라면 선생님을 뵙지 못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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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생각하니, 인사를 제대로 한 것인지, 그 밤에 집에 내려가신다고 했는데 어떻게 내려가시는지 여쭤봤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너무 경황없이 행동한 것은 아닌지 뭐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그래도 어쨌든 선생님을 뵐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게다가 너무 이상한 저자들에게 시달린터라 더욱 반가운 만남이었을거다.


짧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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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누나
Eujlogiva Life l 2008/02/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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