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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누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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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2.0.
2007.11.01
김영진 편집위원


이명세의 신작 <M>을 보고 다시금 이 중견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전작 <형사 Duelist>(이하 <형사>)가 흥행에 실패한 후 그는 대중의 취향보다 너무 멀리 나간 것이 아닌가 점검 중이라고, 다음 영화는 덜 멀리 나간 영화를 찍을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대중의 반응을 고려해 영화를 찍는 것은 영화비즈니스에 종사하는 사람의 의무지만 동시에 자기 본성에 반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게도 영화를 찍을 수 있는데 대중 반응 때문에 다르게 찍었다고 하는 것은 대개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건 자기 개성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는 무능의 변명이라고 보는 것이다. 제작자의 심정은 어떨지 모르지만 이명세의 <M>은 그가 자기 본성에 충실한 예술가임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어쩌면 <형사>보다도 더 그는 말로 따라잡을 수 없는 이미지의 세계로 누구보다 앞서 달려 나간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성질 급한 감독이 배우들의 연기, 카메라 움직임, 조명 배치라는 허다한 영화제작의 물리적인 연출 조건을 재현하느라 애간장이 타지 않았을까 짐작될 정도다.

여하튼 완성된 영화 <M>은 간단한 이야기를 놓고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스타일로 얼을 빼놓는다. 특히 영화 초반 30분이 관객의 마음에 휘몰아치는 이미지의 소용돌이를 안겨주는데, 이 단계에서 만족했다면 다음 전개는 편안하게 따라가게 된다. 그때까지도 도무지 스토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갑갑증을 느끼는 관객이 많다면 이 영화는 이명세의 또 한 편의 흥행 실패작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이게 꿈처럼 펼쳐지는 영화라는 건 일찌감치 영화 초반에 이미 설정돼 있다. 소설가 한민우가 어느 한적한 카페 베란다에 나타나는 초반 장면에서 그를 연모하는 듯 보이는 미미가 안절부절못하며 한민우의 출현을 반기는데, 한민우는 그런 그녀의 동정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잘나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팔리는 소설을 계속 써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그는, 가계 빚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도와줘야 하는 처지에 소설가로서 자신의 한계를 느끼면서 절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 한민우를 미미는 애처롭게 바라보지만 한민우는 미미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다. 이 장면은 시공간의 급작스런 비약을 보여주며 미미와 한민우의 겹쳐지지 못하는 시선을 두고 이후 벌이게 될 추적전의 서막을 알린다.

그쯤해서 이 영화 속의 이미지의 논리라는 것은 다 설정돼 있다. 이 영화는 유령과 인간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되는 과정을 다루는 것이며, 기억과 추억과 강박을 담는 것이다. 한민우가 고등학생 시절 사랑했던, 그러나 의식 속에서 지우고 있었던 미미가 한민우의 주변을 배회할 때 그건 한민우의 환상일 수도 있고 실제로 미미가 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게 꿈이라고,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중얼거리면서 젖게 되는 꿈이라고 말하면 간단하고 편리한 내러티브의 구실이 되겠지만 그 정도로 혼미해서는 이명세의 야심이 충족될 리 없다. 이 영화는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 의식과 무의식, 빛과 어둠, 유성영화와 무성영화, 실재와 재현의 차이를 다 부수고 관객에게 쳐들어온다. ‘우리가 보는 것은 꿈속의 꿈인가, 꿈속의 꿈처럼 보이는 것인가’라는 이명세의 데뷔작 <개그맨>에서의 안성기의 대사는 이 영화를 대하는 관객인 우리의 심정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명세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깊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M>의 초반 한 장면에서 출판사 편집장을 고급 횟집에서 만난 한민우는 아직 원고를 쓰지 못했다는 말을 하려는데 편집장은 그가 완성된 원고를 건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속사포처럼 이어지는 편집장의 말을 감당하지 못해 쩔쩔 매는 한민우의 모습을 담은 이 장면은 무성영화의 슬랩스틱 개그로 연출되고 있다. 모든 것이 일상적 리얼리티를 철저히 부수고 있는 이런 처리는, 이명세의 전작들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이지만 똑같은 장면이 역할을 바꿔 재현되는 나중 장면에서는 할 말이 사라진다. 기억과 재현의 관계를 핑계 삼아 이명세는 이것이 한민우의 생활 속에 실제로 벌어진 사건인가, 누구의 시점으로 보여지는가 따위는 문제 삼지 않는다. 재현되는 그 과정 속에 관객을 다짜고짜 끌어들여서는 거기서 지각되는 순수한 움직임의 슬랩스틱적 쾌감을 즐기게 한 다음, 그런데 이렇게 보여지는 것을 보고 있는 당신의 영화관람 경험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보는 꿈보다 더 꿈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꿈보다 더 꿈같은 영화의 정체에 대해 그가 이 신작을 통해 보여주려 한 무모한 야심의 가닥은 아주 추상적인 영화적인 리얼리티로 나아가며, 꿈을 꾸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듯이, 그리고 의식적인 차원에서 살아내는 것보다 더 농밀한 생의 감각을 느끼기도 하듯이, 영화로 꿈을 꾸는 것이 가장 충일한 생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선언하는 데 이르고 있다. 그가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하는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추상적 테제도 이 영화의 실제 면면을 대하고 있노라면 빈 말이나 허풍은 아닌 것임을 알 수 있다. 영화 중반 첫사랑을 본격적으로 회상하는 단락을 제외한 모든 장면들이 어둠 속의 미로 찾기처럼 설계된 이명세의 공간은 도심의 소란스런 거리와 골목에 푹신하게 잠기는 어둠의 질감을 선사한 다음, 거기 잠겨 한 가닥의 빛에도 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 관객도 따라갈 수 있게끔 각각의 화면들이 구성돼 있다.

이에 관해 철학적인 인식론을 들이대며 분석하는 것보다는 꿈속의 꿈처럼 보이게 하는 경험을 즐기는 과정이 이명세 영화의 진정한 매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명세는 이 꿈속의 꿈처럼 보이는 영화의 경험에 그의 연출된 카메라의 존재를 과감하게 들이대며 일종의 예술적 초자아로 군림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영화에 점점 더 실제 생활의 일상적 질감들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불만이지만, 그가 극도로 추상화시킨 리얼리티에 우리가 현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 그렇지만 꿈속에서라면 느껴보고 싶었던 것들이 구현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정훈희의 과거 히트곡 ‘안개’가 주제곡으로 쓰이는 가운데 강동원이 연기하는 한민우가 자신의 약혼자와 살고 있는 화려한 집 거실을 홀린 듯이 돌아다니는 영화 속 한 장면에서 우리는 노래 가사의 의미를 방사형의 이미지로 마구 발산하는 이명세의 상상력에 슬며시 미소 짓게 된다. 우리가 어떤 노래를 들을 때 슬프거나 아련하거나 벅차거나 설레거나 하는 여러 감정의 연쇄를 마음속에 담으며 '이것을 혹시 영화로 만들면 어떤 꼴이 될 수 있을까' 상상하는 것의 거의 완벽한 실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 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로 이어지는 ‘안개’의 가사는 그 자체로 완벽한 시각적 조응물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속에서 영화 <M>은 한민우와 미미의 첫사랑이 펼쳐졌던 모습을 보여준다.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라는 심정이 되어 그들의 풋풋한 첫사랑은 잠시 기억의 압침에 꽂혀 고정돼 보여진다. 삶처럼 영화도 흘러가며 한 번 지나간 그들의 사랑은 다시 재현되지 않는다. 이명세의 초기작 <첫사랑>에서 보여줬던 주택가 골목길의 풍경처럼 점점 기억의 안개에 가려 망각 저편으로 사라져간 현재 상태에서 이명세는 다시 안개 속의 미몽 그 자체를 헤매는 남녀 주인공들의 방황을 찬미하는 것이다. 혼몽에 빠져 헤매는 그 과정이 어쩌면 삶 자체의 슬픔이고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필자는 이명세의 그 무모한 꿈이 관념적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첫사랑>을 봤을 때 일상적 리얼리티와 첫사랑의 기억을 추상화시킨 형식의 간극이, 이명세의 스타일이 피하지 못하는 관념성이라 생각했던 것이 그로부터 십수 년이 흘러 <첫사랑>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에 대한 호의로 바뀐 것은 필자의 변화인지 이명세 영화의 발전인지 잘 모르겠다.

이명세는 분명히 그 자신은 변하지 않았으며 필자 같은 관객이 무지몽매에서 깨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첫사랑>에서 불변의 첫사랑의 공간을 불러냈던 이명세 스타일은 이 영화 에 선 아예 현재로 옮겨와 정신 못차리고 미몽에 빠져 있는 주인공의 마음과 행위를 그려낸다. 그게 이상하게도 말 못할 슬픔을 안겨주었다.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고 단지 추억할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영화는 어쩌면 돌이키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라고, 기억한다는 것은 절실한 삶의 과정이라고, 그리하여 절실한 미몽에 빠지는 것을 애절하게 그려낸다. <M>은 한층 꿈꿀 능력을 갈고 닦은 중년 감독의 되살릴 수 없어 슬픈 일장춘몽으로써, 그게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 때문에 꿈속의 꿈처럼 다가오는 영화의 영원성과 덧없음을 동시에 일깨운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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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누나
Eujlogiva Life/Audience Life l 2007/11/0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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